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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일본 드라마 '갈릴레오'에서 다시 영화로 제작되어 나온 것입니다. 일본 당대의 톱스타인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그대로 주연을 맡아 영화를 이끌어갑니다. 원작을 일백 프로 살렸다고는 못해도, 보고서 후회될 영화는 아닙니다. 그만큼 재밌습니다.

용의자 X의 헌신

용의자 X의 헌신


그것은 일종의 방정식입니다.

'X제곱 + 2XY = 사랑'이라고 할 때, 이 방정식의 해는 무엇인가?
혹은 2X제곱 + XY 일수도 있고, 여자가 임신을 했으면 루트를 집어넣고, 누군가 살인을 당했으면 뺄셈도 들어갈 것이고, 한 가지 목표를 두고 여러 사람이 싸우고 있으면 나눗셈이 들어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그냥 단순한 산수 기호들을 이용한 것인데, 한 가지 조건은 '사랑'이라는 변수를 포함한 방정식의 해(답)을 구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천재 수학자와 천재 물리학자가 이 방정식을 놓고 한 판의 싸움을 벌인다면 누가 이기게 될까요? 누가 사랑의 방정식에서 정답을 찾아낼 수 있을까요? 추상적인 사랑이 들어간 방정식에서 수학의 기호덩어리로 이루어진 답을 찾아낼 수도 없고 설사 이론상 그것을 찾아냈다고 해도 표현할 문자가 마땅치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음악이라면 가능하겠지요. 도저히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을 음악은 어떻게든 울려낸다는 점에서입니다.

용의자 X의 헌신

야스코와 미사토의 살인


30대의 하나오카 야스코는 젊었을 때 호스테스로 살았는데, 우리나라에서 보통 텐프로라고 부르는 그런 종류의 고급술집 접대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자그마한 도시락 가게를 운영하며 10대의 어린 딸과 함께 살아가는 미모의 여성입니다. 어느 날 그녀에게 옛남편 토가이 신지가 찾아옵니다. 그는 도박빚 때문에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처지로 여자의 등을 처먹는 바퀴벌레 같은 존재입니다. 토가이는 하나오카를 협박하며 돈을 뜯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하나오카의 딸 미사토를 나중에 크면 카바레에 팔아버리겠다고 합니다. 단순한 엄포가 아닙니다. 야스코와 미사토는 이제 토가이에게 평생토록 피를 빨리고 괴롭힘을 당할 처지입니다. 그러다 어린 미사토가 덜컥 토가이에게 덤벼들고, 토가이에게 폭행을 당하게 되자 야스코가 이를 말리려다 급기야 토가이를 죽이게 됩니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이 불쌍한 두 모녀는 살인죄의 공범이 될 처지입니다.

하나오카 야스코의 옆집에는 고등학교 수학 선생인 이시가미 테츠야가 살고 있는데, 이시가미는 대학시절 천재로 불렸던 수학자입니다. 순수학문의 제왕으로 불리는 수학자의 논리력이라면 가히 몬스터급입니다. 이시가미는 두 모녀를 도와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줍니다.

용의자 X의 헌신

이시가미 테츠야


영화는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고, 그가 토가이 신지라는 것이 밝혀지자 경찰은 하나오카 야스코를 용의자로 지목하여 수사합니다. 그런데 증거가 없습니다. 시체를 통해 알아낸 경찰의 살해추정시각에 야스코와 미사토는 영화를 관람했고 증인도 있습니다. 수사는 진척이 없고 답보상태입니다. 경찰은 천재 물리학자이자 탐정인 유카와(후쿠야마 마사하루 분)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그런데 유카와는 이시가미와 대학시절 친구사이였습니다.

조금도 헛점이 보이지 않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는 상황에서 유카와는 이시가미를 의심하게 됩니다. 그는 이시가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지독한 난제를 만들어내는 것과 풀어내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어려울까? 반드시 정답이 있다는 가정하에서...', 그러자 이시가미는 다른 대답을 합니다. '그 풀이로 인해 누구도 행복해지지않아!'

용의자 X의 헌신

유카와, 이시가미


시체는 있는데 범인을 찾지 못하는 상태에서 경찰은 하나오카 야스코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범인이 나타나지 않는 한 계속해서 야스코는 의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때 이시가미가 자신이 토가이를 죽였다고 경찰에 자수합니다. 이시가미가 야스코와 미사토 모녀를 지켜주는 마지막 완벽한 한 수는 자기자신을 범인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그는 천재 수학자로 평생 수학을 연구하고 살다가 삶에 절망하고 자결하려던 순간, 옆집에 야스코가 이사오게 되면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야스코와 사귀는 것은 아니지만, 야스코가 파는 도시락을 사먹고, 미사토가 가끔씩 보내주는 밝은 웃음에서 삶의 의미를 찾게 됩니다. 이것은 천재수학자인 그에겐 엄연히 방정식이었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지닌 방정식이었고, 그는 산의 정상을 오르듯 그 방정식의 정답을 찾아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유카와는 마침내 이시가미가 만들어낸 난제를 풀어냅니다.  그가 만들어낸 완벽한 알리바이, 그것은 시체를 바꿔치는 것이었습니다. 이시가미는 토가이의 시체를 토막내어 수장시킨 후 노숙자를 죽여서 토가이처럼 꾸며 다른 곳에서 발견되도록 한 것입니다. 경찰은 사망추정시각을 실제 토가이가 죽은 1일이 아닌, 노숙자가 죽은 2일로 알고 있고, 그 시각 야스코와 미사토가 영화를 관람했던 알리바이가 있습니다.

이시가미는 자기자신을 마지막 이음새로 하여 야스코와 미사토를 지켜내는 완벽한 알리바이를 구성한 것입니다. 경찰은 이시가미를 체포하게 되고, 이시가미의 사랑방정식은 완성하는 듯 보였습니다.

용의자 X의 헌신

이시가미의 눈물


그러나 균열이 생깁니다. 유카와는 야스코를 찾아가서 이시가미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모두 말합니다. 야스코가 모르는 척 침묵을 지킨다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상황입니다. 이시가미가 바라는 것은 단지 야스코와 미사토의 행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이란 것은 숫자로 표현해낼 수 없는 순간의 지점이 있습니다. 그 지점에서 선택이란 것이 일어나게 되고,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게 됩니다. 야스코는 이시가미가 한 짓을 알게 되자 심적인 충격을 받게 되고, 경찰을 찾아와서 자수하게 됩니다. 이시가미와 같이 형벌의 고통을 치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며 이시가미는 '왜?'라고 말하며 울부짖습니다. 드라마와 영화를 막론하고 가장 완벽한 대사는 말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일종의 음악이 되어야만 보는 사람이 형용할 수 없는 전율의 감동을 받게 됩니다. 야스코를 바라보며 울부짖는 이시가미의 눈물에는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는 대단히 복합적인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유카와는 이시가미가 만들어낸 완벽한 알리바이의 함정을 풀어내지만, 이시가미의 말대로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았습니다. 야스코와 어린 미사토는 모두 죄수복을 입게 되는 것이고, 이시가미 또한 노숙자를 죽인 죄로 형벌을 치르게 됩니다. 참혹한 진실의 대가 앞에서는 삶의 의미를 주억거리는 따위의 행위가 초라해보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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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에어헌터
다시 네거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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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 왠만해서는 일본영화를 잘 안 보는데 이 영화는 괜찮았던 기억이 납니다. 스토리도 탄탄하고 결국
    사회정의를 실현한다는 것, 진정한 범인을 잡는 다는 것이 아무도 행복하게 해 주지 않는다는 결말이
    씁쓸했던 영화죠.
  2. 글을 읽으면서 영화 내용이 다시금 떠오르네요.
    처음에는 굉장한 스릴러인줄 알았는데 범인을 공개하고 시작해서 조금 실망했지만
    영화 내용은 좋았던 것 같습니다. ㅎ
  3. 처음부터 중간 넘어서까지.......명탐정코난을 실사로 만든것같은 착각에........
    하지만 중반넘어서면서 부터 사랑을 주제로 다뤄지는데.....
    불행한 여자였지만....결코 불행할 수만은 없는 여자라서
    어느면에서 부럽기도.......

    하지만 모든게 영화,소설이라는사실.........
    현실은 냉혹하죠.

    그리고 저런 사랑을 아는 남자가 없다는거....

    또한 현실에서 저런 남자가 있다면.....스토커로 신고했을듯...
    • 남자주인공 두 명이 모두 천재설정입니다. 당연히 영화 소설 같은 이야기이고 현실을 과장 극화해서 이야기를 한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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