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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호 감독, 엄정화 주연 영화 '베스트셀러'의 감상을 관람료를 기준으로하여 한 마디로만 표현한다면, 보고나서 영화비가 크게 아깝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과 같이 보면 분위기를 타는 면도 있어서 무난하게 재밌고 볼만합니다. 이 영화는 표절을 소재로 하는데, 표절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건의 매개체 정도로만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공 백작가가 연관된 표절 사건은 실제로 얼마 전에 있었던 주이란, 조경란 작가의 '혀' 표절논란 사건과 거의 흡사합니다. 그 내용은 아래에서 간단히 쓰겠습니다.

영화 '베스트셀러'는 4월 15일 개봉했고, 저는 어제 관람했습니다. 개봉한 지 두 주일이 넘었네요. 그러나 영화는 아직도 하루 종일 상영중이고, 전체 상영관 중 비교적 작은 규모의 관에서 보았는데, 평일 조금 여유있는 시간대였는데도 관람석이 꽉 찼습니다. 그만큼의 흥행이 되고 있다는 의미겠지요. 영화 시작전 광고가 많이 나왔습니다. 10분 이상 광고가 계속 나오니 관람석에서 웅성거리고 소란스런 잡담이 많아지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영화가 재미없으면 어쩌나 걱정이 들었습니다. 소란스런 분위기가 영화상영할 때에도 계속되면 기분이 상할 것 같았습니다.

불이 모두 꺼지고 영화가 시작합니다. 검은 화면에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자막이 올라가면서, 동시에 백작가(엄정화)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영화 주인공은 유명한 여류작가입니다. 인터뷰를 하는 내용이네요. 그런데 영화 관객 중에 문학살롱 따위의 책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듯합니다. 재미없고 따분한 작가 인터뷰를 영화 첫 장면에 내보내는 것은 관객의 흥미를 끌기 어려울 것입니다. 역시나 제작진도 뻔히 알고 있는 일이라는 듯, 작가 인터뷰 내용은 1분도 걸리지 않고 곧바로 백작가의 표절 사건이 터지고, 비난여론이 몰리고, 백작가가 새로 시작하기 위해 어린 딸(연희)과 함께 한적한 시골 어딘가로 떠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싸늘한 색채에 음산하기까지한 시골 정경이 화면에 나오고, 백작가는 곧 마을에서 조금 외진 곳에 위치한 호숫가 별장에 안내됩니다. '이 영화 아주 무섭거든'하는 분위기가 화면에서 바로 흘러나옵니다. 그 별장은 존 베이츠라는 외국인 선교사가 살던 집이라는데 상당히 크고 낡았고 이국적입니다. 백작가는 어린 딸과 함께 집에서 집필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하얀 백지에 글은 써지지 않고, 집이 주는 공포가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뻔한 듯 보이지만 의외로 집안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에서 소름이 서너 차례 돋았을 만큼 꽤 무서웠습니다. 옆자리 남성관객이 애인을 끌어안는군요. 그러나 여성관객들도 많았는데 비명소리가 들려오지 않네요. 관객들을 완벽하게 사로잡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듭니다.

백작가는 그 무서운 집 안에서 귀신의 도움?을 받아가며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배우 엄정화의 연기력이 빛을 발합니다. 이 영화는 여배우 원톱이나 다름없이 전체 이야기를 엄정화가 이끌어갑니다. 영화에는 몇 차례에 걸쳐 반전이 일어납니다. 대여섯 번 되는 것 같네요. 관객들 입에서 비명소리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잡담소리나 불평하는 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그만큼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 충분히 몰입해서 볼만할 정도로 지루하거나 하진 않습니다.

딱 한번 관람 중에 제 입에서 불평이 튀어나온 부분이 있습니다. 백작가가 극중 살해당한 여인 최수진의 실성한 모친(혹은 고아원 원장)을 찾아갔다가 그 실성한 여인이 차에 치여죽는 장면하고, 백작가가 다시 시골마을로 돌아와서 마을 주민들에게 살인자라고 욕하는 장면에서입니다. 영화 보다가 즉시 직관적으로 튀어나온 불평입니다. 그 부분을 지나고 후반부는 또 무난하게 몰입해서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 주인공 백작가는 쓰는 소설마다 베스트셀러인 유명여류작가인데,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신인작가의 원고를 표절했다는 비난을 받게 되면서 영화가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표절논란사건은 얼마 전(2007년도) 주이란, 조경란 작가의 표절시비와 상당히 흡사합니다. 당시 사건은 매스컴에서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한겨레에서 한두 번 나왔고, 프레시안에서 몇 차례 기사가 나온 것을 읽은 기억이 나네요.), 한국 문단에서도 거의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조경란 작가가 신춘문예 심사위원이었을 때, 주이란 작가가 '혀'라는 제목의 원고를 보냈다가 예선탈락했고, 그 후에 조경란 작가가 신작 '혀'를 냈는데 그것이 주이란 작가가 제출했던 소설과 흡사한 내용이라고 해서 주이란 씨가 '나는 영혼을 도둑맞았습니다.'라는 기고문을 냈고, 표절논란이 불거진 것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표절논란이 벌어진 뒤 곧바로 조경란 작가가 동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문단권력이란 소리까지 들먹이며 설왕설래가 이어졌습니다.

단순히 소재나 아이디어 하나 가지고 표절을 들먹일 수는 없습니다. 아주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아닌 이상. 아이디어와 실제로 그것을 가지고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작업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표절논란이 되었던 소설의 소재는 '혀'입니다. 사랑하고, 맛보고, 거짓말하는 혀. 사람의 신체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작가들이 생각해보는 기본적인 것들일 것입니다. 그러니 혀라는 소재를 가지고 누가 누구를 표절했느니 하는 소리는 웬만해서는 별 관심이 가지 않습니다. 게다가 영혼을 도둑맞았다는 식의 거창한 문구로 기고문까지 나오니 과하단 느낌도 듭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주이란 작가 남편되는 사람의 인터뷰 기사가 나온 적이 있는데 주이란 씨가 미식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기억으로 그 내용 중에는 임신 중 입덧 중에 글을 썼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러면 보는 사람 입장에선 또 얘기가 달라집니다. 미식가? 미식가가 혀를 소재로 쓴 소설이라면, 그것도 입덧하는 도중에 쓴 글이라면 한 번 더 관심이 가게 되지요.

위 사건의 결론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두 소설 놓고 탐구해서 결론을 내주면 읽어보겠는데 이미 3년이 지나도록 초기의 주장들에서 별 다른 진전은 없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이 있습니다. 주이란 씨 부부 인터뷰 기사를 보면 이들은 tv도 안보고 사는 부부로 채식주의자라고 하네요. 주이란 씨가 표절이라고 억울하다는 주장할 때, 그 남편되는 사람이 전문직수의사라고 하는데 혼자서 무슨 국제편집자회의 같은 곳에 가서 부인을 위해 피켓시위하는 것도 나온 적이 있고, 아예 남편이 출판사 차려서 부인의 책을 출판해주었습니다. 세상에! 그 몇 년의 시간이 주이란 작가에게는 정말로 영혼을 도둑맞았다고 소리높일 만큼 고통의 시간이었을지 아니면 사랑을 확인한 행복한 시간이었을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어느 영화 관계자가 주이란 씨의 '혀' 소설을 영화화한다는 계약을 맺었다는 기사도 나왔습니다. 조경란 작가는 표절논란 있고 나서 동인문학상 받았다는데, 주이란 작가는 남편의 절대적인 사랑을 확인하고 영화화 계약도 맺었군요. 두 작가 모두 후속작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영화 베스트셀러는 표절 논란이 인 작가를 소재로 했지만, 그 인물이 현실감이란 측면에서 관객들을 확실하게 사로잡기에는 아쉬움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런데도 영화가 볼 만한 것은 부분부분 몰입감이 좋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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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에어헌터
다시 네거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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