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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5월 13일부로 드디어 칸영화제 출품작 두 개가 동시에 개봉했습니다. 개봉날짜뿐만 아니고 두 작품의 포스터도 비슷하게 나와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 '하녀'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에 앞서, 영화를 보는 도중 관객들 사이에서 뭔가 반응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주로 젊은 여성층에게서 적극적인 감탄사들이 들려왔습니다. 무반응이 아니고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냈다는 점은 고무적인 일일 것입니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1960년도작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토대로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원작에서 소재와 영감을 받아들였지만, 리메이크와는 다르고 새롭게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합니다. 등장인물이 원작과 크게 다릅니다. 원작 리뷰 <원작 하녀, 반세기를 초월한 재미는 여전했다>

주인공 은이(전도연 분)는 유아교육과를 중퇴했고 왼쪽 허벅지에 화상자국이 있는 젊은 여성입니다. 영화 속 캐릭터가 조금 맹한 성격으로 나오는데, 상황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한 템포 더딘 인물입니다. 백치미라고도 볼 수 있지만, 영화에서 백치미를 깊이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은이는 아이를 좋아하는 평범하고 착한 여성이고, 다만 욕망 앞에 쉽게 무너지기도 합니다. 그런 은이가 상류층 가정에 하녀로 들어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하녀'를 보고 극찬을 할 수도 있고, 아쉬운 점을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후자 쪽입니다. 영화 러닝타임이 106분인데 너무나 적은 이야기만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하녀'는 억만장자 남편이 하녀와 불륜을 저지르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치명적인 이야기라고 하는데, 굳이 원작 '하녀'까지 언급할 필요없이 루이 말 감독, 제레미 아이언스, 줄리엣 비노쉬 주연의 '데미지'가 있습니다. 일국의 장관인 아버지(제레미 아이언스)가 아들의 연인(줄리엣 비노쉬)과 사랑에 빠지면서, 그 광경을 목격한 아들이 추락사하고 아버지는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치명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마지막 대사도 인상적이지만, 특히 이 영화에는 아주 유명한 대사가 하나 있습니다. 'Damaged people are dangerous!'인데, 우리말로 하면 '상처받은 사람은 위험하다!'가 됩니다. 직역 이상의 의미를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물론입니다.
'데미지'의 러닝타임은 111분으로 '하녀'보다 단 몇 분이 더 많을 뿐이지만, 이 영화에선 '하녀'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여줍니다. 장관인 아버지(제레미 아이언스)의 직업도 절대 피해가지 않는 것은 물론, 부인(아들이 죽은 후 남편 앞에서 보이는 행동과 대사는 강렬하고 화면을 압도할 정도입니다), 아들과 그 연인(줄리엣 비노쉬)의 일생 전체를 관객들이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게 합니다. 그러나 '하녀'에선 등장인물들에 대해서 제대로 나오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억만장자 남편 훈(이정재 분), 부인 해라(서우 분), 장모(박지영 분), 큰하녀 병식(윤여정 분)에 관한 지극히 지엽적인 이야기들을 과하게 보여주는 데 106분이라는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훈은 해라가 임신한 상태여서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자, 새로 들어온 하녀 은이와 욕정을 채웁니다. 은이가 임신을 하자 장모와 해라는 은이를 낙태시킵니다. 은이는 괴로워합니다. 복수를 결심하며 다시 집으로 들어오지만, 배우 전도연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주기도 전에 영화는 끝이 나고 맙니다.

'하녀' 마지막 엔딩씬에서 전도연의 모습을 보고서야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이 영화에 무엇을 기대했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성경보다 먼저 나온 신화 속 악녀로 '릴리스'란 여성이 있습니다. 악녀 중의 악녀입니다. 그런데 그 악녀의 모습은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고, 인간의 내면에서 상반된 두 모습의 한 단면을 극대화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즉,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번 '하녀'에서 전도연이 영화 초반부 천사의 얼굴에서 후반부에서는 점차 욕망의 파멸로 치달으며 변해가는 악녀의 모습까지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60년도 김기영 감독의 원작판에서의 '하녀'는 철저히 자신의 욕망에 지배받는 일관된 팜므파탈적인 여인이 나오는데, 천사와 악녀의 두 모습까지 모두 드러내지는 못했습니다.

이번에 개봉한 '하녀' 이야기는, 해외영화로 '데미지'에 비해서 그 정도의 강렬함이 없습니다. 이 '데미지'는 워낙 유명해서 칸영화제에서도 이미 다 아는 영화겠지요. 또한 주인공 전도연의 경우에도 원작에서 이은심 씨가 연기했던 하녀와는 성격이 다른 인물이지만, 새로운 차원으로 높이 평가하기에는 영화에서 보여준 것이 너무 적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전도연은 줄리엣 비노쉬에 비해서도 결코 못하지 않다고 보는 만큼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지요.

마지막으로 영화 '하녀'에서는 주인집 남편 훈과 부인 해라에 대해서 뭔가 분위기를 내보려고 했습니다만, 아쉽게도 느낌이 약합니다. 그 이유는 최근에 미드 '스파르타쿠스'가 나왔고 미국과 유럽에서 인기리에 방영했는데, 극중 검투사 양성소의 주인 부부인 '바티아투스와 루크레시아'가 '훈과 해라'보다 훨씬 더 지독하고 강렬하기 때문입니다.

영화 '하녀'는 감독과 배우들이 관객에게 무언가 보여주다 말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고,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았던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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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에어헌터
다시 네거리에서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  3개가 달렸습니다.
  1. 다른 영화들은 주인공의 연기가 너무나 강렬했군여
  2. <하녀>를 치명적 욕망으로 읽으시고 <데미지>로 연결하신 글, 신선합니다.
    은이가 빰므 파탈이 아니라 사이코가 되어버린 아쉬움도 공감합니다.
    젊은 여성관객틀의 탄성은 왜 나왔을지 이런저런 상상을 하게 됩니다^^.
    제 리뷰도 트랙백으로 걸어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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