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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
해마다 공포영화가 국내외에서 수십 편씩 쏟아져나오지만, 정작 그 중에서 정말로 뛰어난 작품으로 인정받는 것은 드뭅니다. 공포영화 마니아들에게 인정받는 것은 더더욱 드뭅니다.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는 최근작 중에서는 수작이라고 볼만한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서 더욱 주목받았었습니다. 

이 영화는 특히 '새벽 3시'라는 시간을 공포의 매개요소로 하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이 늦은 밤이었습니다. 공포영화를 즐긴다고 날 잡아서 밤에 불 다 꺼놓고 심취해서 감상하는데, 영화 중간에 새벽 3시라는 시간이 무진장 공포스럽게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시계를 봤는데, 새벽 3시! 하필 그럴 때면 또 소변이 마렵기 마련입니다. 그때 어느 정도 소름이 돋는가에 따라서 그 '공포영화'의 수준이 정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직도 좋은 노래를 들으면 소름이 돋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고, 당장이라도 가을들판에 나가고 싶어집니다. 그럴 때면 '아, 내가 살아있구나!' 하고 생각하지요. 공포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로 잘 만들어진 공포영화를 보면서 두근두근 무섭고 소름끼치고 옴쭉달싹 못할 때면, 살아있다는 것이 정말로 소중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엑소시즘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는 천주교의 엑소시즘을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그러나 무교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영화를 감상하는 데는 지장없었습니다. 에밀리 로즈는 어느 시골출신의 처녀입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악령에 씌운 것처럼 새벽 3시만 되면 기현상이 일어납니다. 몸이 말을 안듣고 간질병 환자처럼 발작을 하고, 스스로도 알아듣지 못할 말을 지껄이고, 하루하루 지날수록 그 강도는 더해져서 결국 리처드 무어 신부가 엑소시즘을 하러 옵니다.

엑소시즘을 소재로 한 영화 중 대단히 유명한 것으로 '엑소시스트'가 있습니다. 천주교에서 악마를 쫓는 의식을 '엑소시즘'이라고 하는데, 엑소시스트 1편에서 엑소시즘을 치렀던 메린신부는 막스 폰 시도우의 연기로 인해 보는 내내 소름이 끼쳤을 만큼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었습니다. 엑소시스트가 영화적 재미에서 엑소시즘에 중점을 두었다면,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는 그와는 달리 악마의 존재나 에밀리 로즈의 유서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리처드 무어 신부가 에밀리 로즈에게 엑소시즘을 하기 위해 정신병원에서 처방한 약을 중단했는데, 에밀리 로즈가 죽는 바람에 이 신부가 살인죄로 재판정에 서게 된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영화가 시작됩니다.

법정드라마의 재미
법정 드라마를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해서는 예전에 리뷰를 올린 것이 있습니다.(관련글->http://cosmolover.tistory.com/admin/entry/preview/208)
교황청에서 임명한 에린 브루너 변호사와 검사가 관객을 대변하는 배심원단 앞에서 설전을 벌입니다. 그 과정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대단히 극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법정드라마로서도 상당히 재밌습니다. 교황청에서는 신부의 엑소시즘이 일어날 때 한 여자가 죽었다는 것이 언론에서 크게 다루어지는 것을 원치않기 때문에 조용히 넘어가기를 바라고 있는데, 문제는 이 신부가 고집불통이라서 검사측과 거래를 하려고 들지도 않고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초반에 증거는 검사 쪽에 있었습니다. 분명히 에밀리 로즈가 죽은 것이 맞고, 리처드 무어 신부에 의해 약을 중단한 사실도 맞습니다. 어려운 싸움이라고 여기던 에린 변호사는 설상가상으로 새벽 3시만 되면 잠에서 깨고 뭔가 불길한 경험을 하기 시작합니다.

제니퍼 카펜터의 신들린 듯한 연기
에밀리 로즈 역을 맡은 제니퍼 카펜터는 그야말로 신들린 듯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웃는 모습은 그야말로 순박한 시골처녀 그대로고, 악령에 들린 연기를 하면서 얼굴을 찡그리기 시작하면 아주 그로테스크한 표정이 나옵니다. 이 영화는 특히 제니퍼 카펜터의 연기로 인해 수작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만큼 뛰어난 연기였습니다. 제니퍼 카펜터는 미드 '덱스터'에서 덱스터의 여동생 역으로 나왔던 배우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밌는 점이 또 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1Q84'에 나오는 아오마메의 생김새가 잘 보면 바로 제니퍼 카펜터를 닮았다는 것입니다.

소설에서 묘사된 부분을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무슨 일이 있어 얼굴을 찡그리면 아오마메의 그런 쿨한 얼굴 생김새는 극적일 만큼 변해버린다. 얼굴 근육이 제각각의 방향으로 힘껏 당겨지고 좌우 비대칭이 극단적일 만큼 강조된다. 여기저기 깊은 주름이 패고 눈이 순식간에 움푹 들어가고 코와 입이 폭력적으로 틀어지고 턱은 뒤틀리고 입술이 말려올라가 희고 큼직한 이가 그대로 드러난다. 마치 묶어둔 끈이 끊어져 가면이 툭 떨어진 것처럼 그녀는 눈 깜짝할 사이에 완전히 딴사람이 된다.……'

에밀리 로즈에서 제니퍼 카펜터가 보여준 표정연기의 극렬함이 바로 그렇습니다. 엑소시스트에선 악령들린 모습을 여배우가 분장을 하고 나오는데, 에밀리 로즈에선 분장을 최대한 자제하고 제니퍼 카펜터의 연기로 하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그러고도 충분히 강렬한 장면들이었습니다.

'새벽 3시'라는 시간의 두려움
새벽 3시는 악마의 기운이 가장 왕성한 시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영화에서도 새벽 3시의 장면이 특히 공들여서 나오고 있습니다. 시계가 '03:00'을 정확히 가리키는 순간, 집안 공기가 싸늘하게 변질되기 시작하면서 등장인물은 잠에서 깨고 맙니다. 문이 열려 있고, 또 창문이 열린 채로 찬바람이 불어닥치고, 옆방에서 소리가 나는 것 같고, 그러다 뭔가가 자신의 가까이에서 역한 유황냄새를 풍기는 듯합니다. 그러나 '새벽 3시'는 영화 소재로 나온 것뿐이지, 현실에서도 새벽 3시만 되면 멀쩡한 문이 열려있다거나 창문이 깨져있다거나 유황냄새가 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영화에서 그 시각을 절묘하게 공포의 소재로 했기 때문에 더욱 재밌었던 것 같습니다.

실화를 소재로 했다고 하는데, 영화 마지막 부분 에밀리 로즈의 유서가 나오면서 다소 과하게 종교적인 색을 입혀놓은 점도 없지 않습니다만,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공포영화이면서도 법정드라마의 재미까지 안에 담겨 있습니다.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는 모처럼 나온 수작 공포영화였습니다. 흥행에서도 성공작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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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에어헌터
다시 네거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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