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대형'에 해당하는 글 1건

이소룡은 1940년 11월 27일(미국)에 출생, 1973년 7월 20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떠났지만, 세계 영화계에서는 결코 지지 않는 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 그 시기의 우리나라는 유신시대였습니다. 경제성장에 박차를 가하면서 문화쪽으로는 암흑기나 다름이 없던 시기입니다. 그의 영화들은 우리나라에 언제 개봉했는지 당시의 기사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

먼저 70년대 우리나라 영화계와 관련된 중요한 기사가 보이네요. 첫 번째는 1973년 6월 기사로, 영화법이 개정되면서 영화업자들이 수입할 수 있는 외화의 종류가 더 많아졌다는 내용입니다. 기사 제목은 '납득안가는 폭력다룬 외화수입허가!'입니다. 기사가 신문의 정치사회면 중요부분도 아니고 '낙서함'이란 점도 흥미롭습니다. 마지막에서 두 번째 줄에 정무문精武門이 보입니다.


73년 당시 한국 영화계는 극히 부진했었다고 합니다. 아래 기사를 보면, 흥행 베스트5로 '이별', '눈물의 웨딩드레스', '벙어리 삼룡', '기생 김소산사건', '여대생 또순이' 등 모두가 여성 취향이었다고 하는군요. 군사정권 하에서 나온 영화들이 대부분 여성관객을 상대로 한 영화들이란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반면에 외화들로는 '정무문', '대부' 등이 이때 개봉하여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소룡의 '정무문'은 1972년도작인데 우리나라에선 73년에 개봉을 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당시에 이소룡의 죽음에 대해서 어느 정도 비중으로 기사가 났었는지 보겠습니다.


위에 손바닥 반의 반 정도 되는 기사가 전부입니다. 기사 내용도 흥미거리 가십 기사처럼, 여배우와 즐기다가 죽었다는 홍콩 경찰청 발표를 여과없이 내보냈습니다. 이소룡의 사망기사가 이렇게 변변치못했던 이유는 당시에 아직 이소룡의 영화가 한국에 개봉하기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인터넷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소룡이 누군지도 몰랐었습니다.


그리고 이소룡이 죽고 나서 며칠 뒤 한국에 그의 첫 번째 영화가 개봉합니다. 바로 '정무문'이었습니다.


영화 홍보 포스터 왼쪽 하단에 보면, '온통 미국을 휩쓴 이소룡이란 사나이는?'이라는 소개 문구가 들어가 있습니다. 7월 20일 타계하였다는 내용이고, 영화 정무문은 이소룡이 죽은 지 바로 1주일 뒤인 27일 전격 개봉하게 됩니다. 그 폭발적인 흥행으로 우리나라는 이소룡 열풍이 불게 됩니다. 그야말로 쌍절곤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제가 정무문을 본 것은 영화가 개봉되고 나서, 몇 년 뒤 동네 동시상영관에서였습니다. 물론 저 혼자 본 게 아니고, 누군가를 따라가서 봤었겠지요.


<정무문>
정무문

정무문




당산대형과 맹룡과강도 보겠습니다.

<당산대형>
이소룡이 얼음공장에 취직해서 일하는데, 알고 보니 얼음공장 사장은 조폭이고 공장은 마약을 제조하는 범죄집단입니다. 이소룡은 공장 사장의 유혹에 넘어가게 되는데, 사랑하는 여자가 죽게 되자  복수를 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고전미가 느껴지는 스틸 사진 한 장을 골라봤습니다.

당산대형

당산대형



<맹룡과강>
맹룡과강은 이탈리아 올 로케이션 영화입니다. 스토리는 복잡하지 않고 단순합니다. 음식점을 빼앗길 처지에 놓인 스승의 조카를 도와 적을 물리친다는 뻔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이소룡은 자신의 카리스마를 여지없이 보여줍니다. 콜롯세움에서 척 노리스와의 싸움 장면은 전문가들이 뽑은 최고의 명장면이라고 하네요.

맹룡과강

맹룡과강



<용쟁호투>
이소룡의 영화 중에서 헐리우드가 제작에 참여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가장 대작으로 나온 것이 '용쟁호투'입니다. 무술의 고수 소림 제자인 이소룡에게 CIA가 모종의 청탁을 합니다. 범죄소굴인 어느 섬에 가서 CIA비밀요원의 행방을 알아내고, 섬의 증거들을 확인한 뒤 연락해달라는 것입니다. 섬의 주인은 이소룡과 같은 소림사의 고수이고, 그의 제자들 중에는 이소룡의 누이동생을 죽인 원수도 있습니다. 아래 두 번째 사진도 이소룡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것이죠. 이소룡이 피맛을 보는 장면입니다. 그 뒤로 이어질 대사는 물론 '너는 이미 죽어있다.'쯤으로 될 것 같습니다.

용쟁호투

용쟁호투



가끔 생각날 때 이소룡 영화 한 번 보면 스트레스가 확 풀릴 때가 있습니다. 머리 복잡하지 않고, 시원하고 화끈합니다. 아마도 그의 카리스마는 순도 100%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WRITTEN BY
에어헌터
다시 네거리에서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  2개가 달렸습니다.
  1. 어렸을 때 단체영화로 사망유희를 봤었죠~!
    그 괴성 잊을수가 없어요~!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