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막극부활'에 해당하는 글 1건

빨강사탕에 개미가 꼬인 사진 한 장이 있습니다. 먹다 버린 빨강사탕과 거기에 달라붙은 개미들을 보고 사람들은 더럽고 불결하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고나면 그 생각이 크게 바뀌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KBS드라마스페셜 '빨강사탕'입니다. 그 먹다버린 빨강사탕이 꼭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 같았습니다. 이젠 길가에 버려진 빨강사탕을 보고도 더럽다는 말은 못할 것 같습니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한 마디 말이 귓가에 맴도네요. '이 사람만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이라는 한 여자의 믿음인데, 세상 남자들이 다들 똑똑한 척만 하지, 저도 그 빨강사탕에 달라붙은 개미 한 마리보다 나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KBS에서 드디어 5월 15일 '드라마스페셜'이란 이름으로 단막극을 다시 열었습니다. 노희경 극본 홍석구 연출 '빨강사탕'이 첫회입니다. '빨강사탕'은 40대 가장의 불륜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 이야기는 꼭 불륜에 한정된 것은 아닙니다. 학창시절부터 군대전후, 직장생활까지 남자들은 대부분 그 달콤한 빨강사탕을 눈앞에서 놓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그 여자가 정말 정말 좋았다'고 시작하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출판사 영업부장 재박(이재룡 분)으로 뻔한 일상 속에 치여 사는데, 그의 유일한 즐거움은 출퇴근 지하철에서 유희(서점직원, 박시연 분)의 모습을 훔쳐보는 것입니다.
어느 날 재박은 아내가 아들 데리고 필리핀 어학연수를 간다고 난리를 치고 떠난 후, 유희를 지켜보던 백일이 되는 날 꿈 같은 일이 정말로 현실이 됩니다. 유희가 그에게 손길을 내민 것입니다. 두 사람은 바닷가로 여행을 가고, 그렇게 첫 입맞춤을 하고 같이 밤을 보냅니다. 유희는 재박이 유부남이란 것을 알면서도 사랑을 지켜가는데, 재박에게는 유희를 둘러싸고 들려오는 소문들이 하나같이 좋은 게 없습니다. 예전에 다른 유부남과 사귀다 그 가정을 박살냈다는 둥, 동거남이 있다는 둥, 꽃뱀이라는 둥.
유희로 인해 자신의 가정이 깨질까 두려워하던 재박은 헤어질 결심을 하고야 맙니다. 유희가 항상 입에 물고 다니는 빨강사탕 한 통과 골프채 사겠다고 모은 비상금을 남기고 이별의 편지를 씁니다. 그러나 유희가 원한 것은 단지 한 통의 전화였습니다. 괴로워하던 유희는 어느날 술에 취해 횡단보도를 건너다 죽고맙니다.

요즘 한국드라마들은 대부분 생방송드라마라서 촬영이 제대로 안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드라마와 비교해보면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하철 장면' 하나만 해도 완벽에 가까울 만큼 리얼하게 나왔기 때문에 한번 보면 실감나지 않을 수 없고, 그렇게 몇 분만 보다보면 결국 끝까지 다 보게 됩니다.
무엇보다 가장 뛰어났던 점은 보는 사람에 따라 여러 해석의 여지를 남긴 마지막 엔딩의 빨강사탕 장면입니다. 극중 유희의 죽음을 신파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동양의 민담전설로 우렁각시 같은 것처럼 몽환적으로 해석할 여지 또한 없지 않습니다. 재박이 부부싸움 하고 나서 빨강사탕 하나 먹다가 잠이 들었다가 그렇게 꿈 속에서 벌어진 이야기로 '한여름낮의 꿈'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시청자들에게 보여준 그러한 이미지 하나는 단순한 시청률로는 측정이 불가능할 만큼 큰 가치가 있습니다. 저도 아주 예전에 보았던 TV문학관의 이미지들을 오래토록 기억하고 있습니다.

KBS드라마스페셜 첫회 '빨강사탕'은 전국시청률 5%대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아직 인기는 높지 않지만, 산술적으로 재기 어려운 가치도 있고 충분히 인기프로그램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람들이 이번 '빨강사탕' 같은 명작을 한번 보기 시작하면 이러한 단막극이 얼마나 좋은지 서서히 알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단막극이라고 해서 꼭 무거운 소재나 비극적인 내용만 나오는 게 아닙니다. 다음편은 '무서운 놈과 귀신과 나'라는 작품이라고 하는데, 좀더 경쾌하고 재밌는 소재인 듯하네요. 조폭 두목이 여학생 귀신을 쫓아달라고 흥신소에 의뢰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하는데, 박기웅, 이원종, 김민지가 나온다고 합니다.

매주 새로운 작품이 나오고, 그 중에는 미니시리즈로 나올 것도 있을 것이고, 사람들에게 잊혀져가고 있는 좋은 단편소설들도 다시 드라마로 살아날 수도 있고, 제일 좋은 것은 다양한 장르가 시도될 것이고, 그 장점은 넓고 큽니다. 드라마스페셜 화이팅!!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WRITTEN BY
에어헌터
다시 네거리에서

받은 트랙백이 없고 , 댓글  2개가 달렸습니다.
  1. 오 이재룡... 'ㅡ' 음..내가 좋아하던 여배우랑 결혼한 아찌 맞나..그그..음..그 여배우 ㅋㅋㅋ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