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r Hunter

<윤태호 원작, 강우석 감독 '이끼'>
개봉 이틀째 저녁 시간 관객석은 꽉 찼고, 처음 유해국(박해일 분)과 천용덕(정재영), 김덕천(유해진) 박민욱(유준상) 등이 나오면서부터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습니다. 영화 러닝타임이 2시간 43분인데, 중간에 간간이 웃음소리가 나왔고, 하성규가 유해국을 해코지하려는 장면에선 비명소리도 들렸습니다. 마지막 이영지의 반전 장면에선 사람들이 뒤늦은 놀람을 받아들이며 뭐지?하는 분위기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영화 나오면 '그거 어때?'하는 질문에 한 마디로 답해야합니다. 재밌었는지, 재미없었는지. 단 한 마디로만 하면 돈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재미 여부에 대해서는 편이 갈립니다. 원작을 본 사람과 보지 않는 사람, 남성 관객과 여성 관객, 그리고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 시리즈를 보고 빵빵 터지는 관객과 그렇지 못한 관객 사이에 감상이 틀릴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러닝타임의 압박이 큽니다. 영화 보다 중간에 두 번 시계를 봤는데, 공교롭게도 한 시간에 한 번 꼴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작진이 죽기살기로 영화시간을 2시간 이내로 줄여주었다면 훨씬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영화 첫 주 흥행은 호조를 보이고 있고, 영화에 대한 평은 찬사와 아쉬움으로 제각각입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쓰려고 합니다. 원작과 영화에 대해서 기존에 나와있는 시각과는 다른 이런 시각도 있었다는 것을 더해보고 있습니다.
원작을 보면, 주인공 유해국의 아버지 유목형은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눈앞에서 산모가 태아를 쏟아내고 죽는 것을 보고 극심한 충격을 받게 됩니다. 그는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 기도원에 들어가 성경에 심취합니다. 그런데 목사가 되는 것도 아니고, 일반적인 기독교인의 길과는 질적으로 크게 다릅니다. 생식을 하면서 성경을 수십 번 정독하고, 기도원에 있는 사람들을 동화시키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자신을 배신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혹은 유토피아)에 어긋나자 기도원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버립니다. 이것이 유목형이란 인물입니다. 단순한 종교인과는 크게 다릅니다. 이 장면을 보고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은 그 유토피아의 왕이 되고 싶어하는 것이다'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꿈꾸고 건설하려는 유토피아가 망가지면 그것을 파괴해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시각에서도 유목형의 행위가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으로는 뭔가 부족합니다. 왜 기도원 사람들이 유목형을 숭배하다시피했고, 천용덕과 전석만 등 마을 사람들이 유목형을 두려워했었는지가 문제됩니다. 유목형이 뭔가 보통의 인간과는 달랐기 때문입니다. 기도원에서 보였던 유목형의 기행은 일반 사람의 범주를 넘어섭니다. 손톱만큼도 마음의 흔들림도 없는 인간이면서도, 또한 죄책감이나 살인충동과는 전혀 다른 정신상태로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여버릴 만큼 정상을 벗어난 인간입니다. 그러나 이건 불가능합니다. 인간은 본래가 변덕스러운 존재라서, 끊임없이 유혹에 빠지고 복합적인 감정이 뒤섞여서 자기도 자기자신이 어떤지를 모를 때가 더 많은 게 인간입니다. 그리고 그 불완전성이 보통의 인간을 정상이라고 판정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일체의 번민도 없고, 그것도 하루이틀이 아니고 1년 내내 그렇다면, 아마도 그 눈빛을 보는 일반 사람들을 소름끼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즉, 달리 말하면 유목형이 월남전에서 심적인 충격을 받았을 때, 의식에서 무의식 속으로 들어갔다가 자기자신을 재구성해서 전혀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난 것으로 보게 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의식이란, 거대한 무의식의 바다에 비한다면 그저 우물 정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원작 '이끼'에서 이 유목형이란 캐릭터는 기존의 우리나라에서 한번도 나온 적이 없는 인물인 것이 됩니다.
유목형과는 다르지만, 비슷한 캐릭터가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와 '20세기 소년'에 나옵니다. 이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원시시대로부터 이어져오는 인간 집단의 공포심과도 선이 닿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어떤 인간이 갑자기 등장하게 되었을 때, 무리의 구성원들이 그런 인간을 보면 공포심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원작 '이끼'에선 이 유목형이란 인물이 나이를 먹고 노쇠해지면서 무의식의 갑옷을 잃어버리고 다시 의식의 지배를 받는 평범한 인간으로 변하고, 더 이상 공포심을 유발하는 존재가 아니고 천용덕으로 인해 자신이 꿈꾸었던 마을의 이상이 짓밟히는 인물이 됩니다. 영화 '이끼'에선 아예 유목형이란 인물의 내면이 어떤 존재인지가 나오지 않습니다. 단지 기독교에 심취한 평범한 인물로만 그려지고 있습니다.
대단히 아쉬운 점입니다.
원작 '이끼'에서 최고의 압권이었던 장면은 초반에 유해국이 자신의 캐릭터를 드러내는 부분이었습니다. 어찌보면 지극히 쫌스럽기 이를 데 없어서 아주 사소한 것도 참지를 못하고 꼬치꼬치 따지다가는 결국 주변사람들을 질리게 하고 파국을 맞는 인물입니다. 유해국은 아버지의 죽음과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이상한 낌새를 감지하게 됩니다. 이건 더듬이 같은 것입니다. 유해국은 더듬이과 동물이고, 유해국이 마을에 대해 의심을 시작하는 순간 갑자기 스릴과 서스펜스의 장엄한 막이 오릅니다. 유해국의 심리상태에서 뻗어나간 촉수가 마을 곳곳을 누비며 제멋대로 추측하고 의심하는 대로, 마을이란 공간은 보는 사람을 꼼짝달싹 못하게 사로잡는 한 편의 심리스릴러의 장으로 변합니다. 이장 천용덕을 위시해서 김덕천, 전석만, 하성규 모두 유해국의 더듬이와 촉수로 인해 시시각각 그 모습을 바꾸며 긴장감을 배가시킵니다. 그러나 영화 '이끼'에서는 아쉽게도 유해국 역의 박해일이 더듬이와 촉수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유해국의 캐릭터를 강렬하게 드러내야하는 그 장면을 영화 제작진이 삭제해버렸기 때문입니다. 박해일로서는 뼈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반면 정재영의 스크린을 압도하는 대사로 인해 2차원의 평면인 스크린이 산산조각 나고 마치 눈앞에서 그 마을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대단했었습니다.

영화 '이끼'의 마지막 반전은 강우석 감독이 관객과의 싸움이라고까지 언급하면서 내세우는 장면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유목형, 유해국 두 인물의 캐릭터가 무너진 대가로 얻은 한 장면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눈물겹게 아쉬운 장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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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어헌터 TRACKBACK ONE COMMENT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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